수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바램을 혼동하는 것 같다.
믿음은 반드시 결과와 일치해야 하지만 바램은 결과의 유무에 관계가 없다.
생각해보라.
가령 당신이 당신의 은행 계좌에 100억원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하자.
당신의 믿음대로 은행 계좌에 100억원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다.
그러나 없다면 망상이거나 바램일 뿐이다.
믿음은 반드시 결과와 같을 때만 올바른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망상이나 착각 혹은 단순히 그러하길 바라는 바램을 가진 것 뿐이다.
자 그럼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어떨까?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일부 교파에서는 계명을 잘 지켜야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뭐 어쨌든 믿음에 대한 키워드는 구원과 천국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불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부처가 되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고 믿는다.
무신론자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바라든 그 실체는 변하지 않는다.
100층 높이의 건물에서 뛰어 내리면서 죽지 않을 거라 확신하며 믿는 것과 실제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정말 믿음대로 죽지 않으면 그 믿음은 참인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상관없이 죽는다면 그 믿음은 바램인 것이다.
결과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항상 참이다.
다만 당신이 결과를 잘못 이해했거나 오해했을 뿐이다.
어떤 교파와 상관없이 기독교인에게 당신은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예수를 믿기 때문이라거나 계명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이들의 믿음처럼 이들이 구원을 받은 게 맞을까?
이들의 믿음과 상관없이 이들이 죽었을 때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라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면 이들은 뭐라고 할까?
하나님이 사기를 쳤다고 이를 갈며, 악을 쓰고 저주할까?
자신의 믿음이 모자라서 이렇게 되었다며 자책할까?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상관없다.
이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걸었기에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은 것 뿐이다.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거나 허언을 하지 않으신다.
오직 참만을 말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당사자가 오해를 해서 잘못 받아들인 것 뿐이다.
믿음이 참인 경우는 반드시 결과가 참인 경우이다.
믿음과 결과가 다른 경우는 믿음이라고 확신했던 것이 실제는 바램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다시 묻겠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는가?
이 질문에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결과를 알 수 있느냐고…
믿음이든 바램이든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뭐가 되었든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에 도달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이 참인지 질문해야 하고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더듬어 살펴야 한다.
이런 과정과 노력이 귀찮다면 그냥 로또 당첨번호 뽑는 심정으로 자신이 선택한 패가 당첨이 확실하다 믿고 그냥 쭉 가면 된다.
운이 좋아 결과가 당첨이면 당신의 믿음은 참인 것이 될테고, 그게 아니라 꽝이면 당신의 믿음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다행스럽게도 성경에는 이미 죽음을 경험하지 않아도 구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성경을 끊임없이 연구해서 구원에 이르는 길인 줄 알고 평생을 열심히 달려갔던 길이 멸망에 이르는 길이 아니길 바란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다고 치자.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 바램인지 잘 생각해보라.
당신의 믿음이 참이기 위해서는 상대가 당신의 믿음대로 실망시키지 않거나 배신하지 않아야 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상대를 믿은 것이 아니라 그러길 바랬던 것 뿐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었는데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닌 것이다.
당신이 부처를 믿었는데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부처를 믿은 것이 아닌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믿었는데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세상을 믿은 것이 아닌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었는데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그를 믿은 것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믿음과 바램은 다르니 혼동하지 말자.